왕과 사는 남자 표절소송 기각, 흥행 2위 등극 배경
오늘(7월 23일) 서울서부지법 민사21부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어요. 드라마 ‘엄흥도’ 작가 유족 측이 표절을 주장하며 낸 소송이었는데, 법원은 두 작품의 서사 구조 자체가 다르다고 봤습니다 — 역사적 사실이 겹치는 것과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창작적 표현’이 겹치는 건 별개 문제라는 거죠. 이 영화는 이미 누적 관객 1,690만 명 안팎, 역대 국내 개봉작 흥행 2위에 올라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설 연휴에 극장에서 이 영화 보신 분들 꽤 많으실 텐데, 저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그런데 그사이에 이런 소송이 걸려 있었다는 건, 이번에 판결 소식을 찾아보다가 알았습니다.
사실 흥행 영화에 표절 시비가 붙는 일 자체는 낯설지 않아요. 다만 이번처럼 ‘역사적 사실’과 ‘창작적 표현’의 경계를 정면으로 다룬 판결은 흔치 않았고, 그마저도 천만 넘긴 영화가 스크린에 걸려 있는 동안 나온 결정이라 시점이 묘하게 겹칩니다.
서울서부지법이 오늘 내린 결론부터
이번 가처분을 낸 쪽은 드라마 ‘엄흥도’ 시나리오를 쓴 작가의 유족이고, 상대는 영화 공동 제작사 온다웍스·비에이엔터테인먼트와 배급사 쇼박스예요. 재판을 맡은 곳은 서울서부지법 민사21부(신명희 부장판사)고, 결론은 ‘기각’입니다. 유족 측은 자신들이 2000년대 초반 투고했던 미방영 드라마 시나리오의 독창적인 각색이 영화에 그대로 들어갔다고 주장했거든요.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가처분이 기각됐다는 건, 일단 영화는 계속 스크린에 걸린다는 뜻이에요.
본안 소송(손해배상 등)이 별도로 이어질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상영을 막아달라’는 요청은 법원 문턱을 넘지 못한 셈이더라고요. 가처분은 통상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명백할 때 받아들여지는 잠정 조치라서, 인정 문턱이 원래도 꽤 높은 편입니다. 표현의 유사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면 그 문턱을 넘기가 더 어려워지는 구조고요.

흥행 스코어, 역대 2위라는 말이 진짜인지 숫자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이자 여섯 번째 장편 연출작이에요. 계유정난으로 폐위돼 노산군으로 강등된 어린 왕 이홍위(훗날 단종)가 영월 산골 촌장 엄흥도를 만나 최후를 함께하는 실화 기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2026년 2월 4일 설 시즌에 개봉했고, 3월 6일 국내 개봉작 중 34번째로 천만 관객을 넘겼어요. 그리고 7월 23일 현재 누적 관객 약 1,688만~1,691만 명으로, 2014년 ‘명량'(1,761만여 명) 다음으로 역대 국내 개봉작 흥행 2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 순위 | 영화 | 개봉연도 | 누적 관객수 |
|---|---|---|---|
| 1위 | 명량 | 2014 | 약 1,761만 명 |
| 2위 | 왕과 사는 남자 | 2026 | 약 1,688만~1,691만 명 |
표로 보면 차이가 확 와닿으실 텐데요, 1위와의 격차가 70만 명 안팎이라 생각보다 근소해요. (사실 정확한 3위 스코어까지 찾아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2위 자리가 이렇게 촘촘한 차이인 줄은 몰랐네요.) 상영금지 가처분이 기각된 만큼 스크린도 당분간 계속 유지될 텐데, 그렇다면 누적 관객수는 앞으로 조금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천만 관객을 넘긴 것 자체는 이미 확정된 기록이지만, 역대 순위표는 이렇게 상영 기간이 남아 있는 동안 계속 바뀔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더라고요.

표절 시비, 법원은 왜 안 받아들였을까
유족 측이 이번에 제시한 유사점은 한둘이 아니었어요. 유배된 단종이 특정 음식을 먹는 설정, 절벽에서 투신하려는 인물을 주변에서 만류하는 장면, 여러 자녀를 한 명으로 압축한 설정, 여러 궁녀를 한 인물로 단일화한 설정 등 총 7가지 쟁점을 나열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장면 단위로 촘촘히 대응시킨 주장이라 꽤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해요. 그런데 법원이 실제로 가장 무겁게 본 근거는 이런 개별 장면의 일치 여부가 아니었습니다.
재판부가 콕 짚은 건 두 작품의 서사 구조, 그러니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줄기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유족 측 원작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종을 향한 엄흥도의 한결같은 충성과 헌신을 축으로 그려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반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과 엄흥도, 그리고 산골 마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갈등하면서 함께 변화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핵심 주제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에요. 인물 설정도 이런 서사 차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함께 제시됐고요. 개별 장면 몇 개가 겹친다고 해서 이야기 전체의 뼈대까지 같다고 볼 수는 없다는 논리인 셈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번 판결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이라 표절이 아니다’는 두루뭉술한 결론이 아니라, 두 작품을 실제로 나란히 놓고 서사의 결을 비교한 뒤 내린 판단이라는 뜻이니까요. 법원이 판단 과정에서 굳이 인물 관계와 이야기 흐름까지 짚어가며 설명한 것도, 표절 여부를 가릴 때는 장면 하나하나의 겹침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줄기가 얼마나 다른지를 더 비중 있게 봤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여기에 더해 유족 측이 원작 시나리오에 영화 제작진이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 즉 표절이 성립하려면 전제가 되는 ‘의거 관계’도 입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서사 구조도 다르고 접근 가능성도 증명이 안 됐으니, 법원 입장에서는 상영을 당장 멈춰야 할 만큼 급박하고 명백한 손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조금 더 넓혀서 보면, 사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이런 시비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해요. 단종 폐위나 엄흥도의 시신 수습 같은 사건은 실록에 이미 기록된, 말 그대로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는 역사적 소재입니다.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건 그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걸 어떤 인물 관계와 어떤 줄거리로 풀어내느냐는 ‘표현’의 영역이에요. 그래서 같은 역사적 인물·사건을 다뤘다는 사실만으로는 표절이 성립하지 않고, 이번처럼 서사의 줄기와 인물 설정 같은 구체적 창작 요소가 실제로 겹쳐야 인정된다는 게 법리의 핵심입니다. 앞으로 나올 다른 사극·역사물도 결국 이 경계 위에서 소재를 고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생각 — 이런 소송,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 같아요
사극은 원래 실존 인물·사건을 다루다 보니 소재가 겹칠 수밖에 없는 장르잖아요. 그래서 ‘역사적 사실 vs 창작적 표현’을 가르는 일반 법리는 물론이고, 이번처럼 두 작품의 서사 구조와 핵심 주제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방식까지, 앞으로 비슷한 사극·역사물이 나올 때마다 참고 기준으로 계속 소환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같은 인물을 다룬 작품이라도 결국 ‘누구의 시선으로, 어떤 줄기의 이야기를 그렸는가’가 표절 여부를 가르는 실질적 잣대가 된다는 걸 이번 판결이 보여준 셈이니까요.
지난번 ‘한국영화 관객수 75% 늘었는데 개봉작은 줄었어요’ 글에서도 잠깐 얘기했는데, 그 증가세 안에서 실제로 역대급 스코어를 낸 작품이 바로 이 영화예요. 흥행과 소송 리스크를 동시에 짊어진 채로도 관객이 계속 들었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로운 지점이더라고요. 소송 소식이 나올 때마다 관람을 망설인 분들도 있었을 텐데, 이번 기각으로 그런 부담 없이 극장을 찾는 분들이 좀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짚어볼 만한 사안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이 판결, 납득 가시나요?






